지역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 전통 수공예가 그 중심에 서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균형 발전과 로컬 콘텐츠 강화가 국가 정책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전통 수공예 산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브랜드화’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경제활성화 수단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고유의 문화 콘텐츠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통 수공예는 그 지역의 기후, 재료, 역사, 생활양식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과 달리 ‘그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희소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 특성이 최근 지역 브랜딩 정책의 중심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경남 함안은 전통 왕골 공예를 중심으로 지역 브랜드 사업을 재정비하고 있으며,
충남 공주는 한지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공주한지문화도시’를 선언했습니다.
전북 전주는 오랜 한지 산업 기반을 살려 전주비엔날레와 연계한 전통소재 도시화 전략을 추진 중이고,
경북 안동은 유교문화권과 연계하여 목공예 및 종가문화 기반의 수공예 브랜드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정책 방향은 똑같지 않습니다.
일부 지역은 장인의 고유 브랜드를 중심으로 지원을 하고 있고, 다른 지역은 체험형 관광과 융합하거나,
혹은 청년 창업과 연결된 신유형 수공예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으로 정책적으로 수공예 브랜드화에 집중하고 있는 전북 전주, 경북 안동, 충남 공주, 경기 이천을 중심으로
그 정책 방향과 실제 사례, 그리고 차별점까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전주 vs 안동: 전통 기반과 현대 전략의 균형을 찾는 실험
전주와 안동은 모두 전통 수공예의 중심지로 꼽히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두 도시의 접근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전주의 전략은 ‘문화산업과의 결합’에 가깝습니다.
전주는 오랜 한지 생산의 중심지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지업(紙業)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시는 ‘전주한지문화축제’와 ‘전주한지 비엔날레’를 통해 한지를 소재로 한 현대 예술과 디자인을 육성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한지 의상 디자인, 한지 가구, 한지 조명 등으로 콘텐츠 범위를 넓혀 ‘한지 도시’라는 도시 브랜딩을 명확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반면 안동은 문화유산 중심의 접근을 택하고 있습니다.
전통 종가, 유교 사상, 안동소주, 하회탈 등 유교문화권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유교문화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그 중 하나로 전통 수공예를 ‘의례문화’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살려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동 탈공예의 현대화입니다.
탈 제작 장인들의 기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현대 캐릭터 산업과 접목해 ‘하회탈 굿즈’, ‘전통탈 AR 필터’ 등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전통 기술의 저작권 등록과 디자인권 보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두 도시 모두 전통 공예를 살리고 있지만, 전주는 ‘문화산업+디자인’, 안동은 ‘의례+정체성+보존’ 중심입니다.
같은 전통이라도 도시의 역사성과 정책 방향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브랜드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비교 사례입니다.
공주 vs 이천: 장인과 시민이 함께 만든 수공예 도시의 실험
충남 공주는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한 전통 수공예 브랜드 정책의 변화가 있었던 도시입니다.
특히 공주한지문화도시 프로젝트는 단순히 장인의 기술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 주도형 한지문화 기반 도시 만들기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공주시에서는 2021년부터 장인, 공예가, 일반 시민이 함께 ‘우리 동네 한지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공주한지주간(공한주)에는 지역 초등학교, 유치원, 복지관 등에서 생활 속 한지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합니다.
눈여겨볼 점은, 이 정책이 단순한 체험행사가 아니라 ‘일상형 공예 시민 육성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수공예를 일상의 언어로 만들고, 지역민 스스로가 전통 기술을 현대 생활에 적용해보는 것을 유도한 것입니다.
이 결과 공주에서는 한지 그릇, 조명, 포장지 등을 만드는 작은 시민 창작공방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 중 일부는 공공디자인 시범사업으로까지 연결되었습니다.
반면 경기도 이천은 도자기 공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이천 생활공예 창업지원센터’를 통해
도자기뿐 아니라 금속, 섬유, 목공, 유리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 수공예 스타트업 육성지’로서의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천은 타 도시와 달리 기술 중심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전통 수공예를 디지털화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공방에 센서 기술을 도입하거나, 3D 프린팅과 전통 기법을 혼합한 창작 방식도 장려하고 있습니다.
전통을 ‘혁신의 기초’로 삼는 매우 미래지향적인 모델입니다.
수공예 브랜드 정책의 핵심은 결국 ‘사람과 맥락’입니다
앞서 살펴본 네 도시의 전통 수공예 정책은 각각 다른 방식과 목적을 갖고 있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한 가지는 ‘지역 정체성과 인간 중심의 가치’입니다.
브랜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공예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누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진정한 브랜드가 됩니다.
전주의 한지, 안동의 탈, 공주의 시민형 한지 공방, 이천의 기술융합 수공예는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결국 사람 중심의 설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의 수공예 정책이 관광과 경제적 수익을 넘어서
삶의 질, 공동체 회복, 교육 콘텐츠화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흐름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전통 수공예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감정, 기억, 공동체 문화를 담아내는 수단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전통 수공예 정책은 국가에서 하달하는 방식이 아닌,
지역 고유의 역사와 사람을 바탕으로 설계되어야만 지속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브랜드 정책은 ‘예산 지원’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맥락을 설계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며,
수공예는 그 이야기의 가장 깊은 층위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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