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수공예 브랜드에 맞는 CRM 전략은 무엇인가?
‘고객’이 아니라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전통 브랜드
전통 수공예 브랜드가 요즘처럼 빠른 흐름 속에서도 꾸준히 브랜드로서 자리잡으려면, 단순한 마케팅 전략보다 더 정교한 ‘관계 설계’가 필요합니다. 대량 생산 제품과는 달리, 수공예 제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개별성과 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고객이 단순한 소비자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때로는 작가의 철학에 공감하는 팬이 되기도 하고, 브랜드의 정체성에 몰입한 지지자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통 수공예 브랜드가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전략은 ‘고객’이 아니라 ‘관계’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수공 액세서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담을공방’은 구매자 명단보다 ‘구매 이후 자주 소통하는 사람의 리스트’를 우선 관리합니다. 한 번 산 고객보다, 구매 후 제품의 손질을 문의하거나, DM으로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이들에게 우선순위를 둡니다. 이 방식은 단기적 매출은 줄일 수 있지만, 고객이 ‘팬’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입니다. CRM의 핵심은 결국 장기 고객을 확보하고, 이들이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를 확산시키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 브랜드에게는 이 방식이 훨씬 적합합니다.
또한 수공예 브랜드는 고객의 연령, 주소지, 구매 금액 등의 통계 정보보다, ‘관심의 이유’와 ‘작가와의 연결감’이 얼마나 있는지를 수집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CRM 시스템에서 이 정보는 비정형 데이터에 불과할 수 있지만, 공예 브랜드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충성도 지표가 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상품 관리’가 아닌 ‘고객과의 정서적 기억 관리’로서의 CRM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충성 고객’을 만드는 대신 ‘기억에 남는 고객 경험’을 설계하라
대다수의 CRM 전략은 ‘고객을 얼마나 오래 유지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전통 수공예 브랜드는 수명이 짧거나 반복 구매가 많지 않은 상품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CRM 전략은 과연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요?
핵심은 ‘충성 고객’을 늘리는 것보다, 한 번의 구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에서 나전칠기 기반 수공예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장인은, 고객에게 상품을 보낼 때 상품의 역사, 기법, 작가의 철학이 담긴 미니 수기 노트를 동봉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객이 왜 이 물건을 주문했는지, 혹은 어떤 날을 위해 주문했는지에 대한 짧은 질문에 답을 받아, 그에 맞춘 맞춤 문장을 동봉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성 기반의 대응’은 CRM 시스템에서 흔히 말하는 자동화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방식입니다. 최근에는 이를 디지털화하기 위해, 고객의 취향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큐레이션이 가능한 ‘스토리형 배송 안내서’를 제공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 수공예 브랜드는 구매 순간을 이벤트가 아닌 이야기의 시작으로 설정하고, 이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이어지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CRM은 결국 고객이 ‘다시 사고 싶다’가 아니라, ‘다시 기억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합니다. 전통 수공예 브랜드라면 이 감성적인 설계가 매출보다 훨씬 강력한 지속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데이터가 아니라 감각을 기록하는 CRM 전통 공예에 맞는 데이터 전략
수공예 브랜드에 있어 CRM은 흔히 사용하는 플랫폼 기능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CRM 소프트웨어는 구매 금액, 반복 주기, 클릭 수, 반응률 등 정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지만, 전통 수공예 브랜드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정량화가 불가능한 감각적인 경험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공예 브랜드는 ‘기억 기록 노트’라는 아날로그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가령 전주에서 옻칠 나무 수저를 만드는 브랜드 ‘기림목’은 고객이 왜 이 제품을 구매했는지를 전화로 묻거나, 메신저로 받은 감상평을 직접 수첩에 기록합니다. 이 기록은 이후 해당 고객이 문의나 재구매를 할 때 작가가 다시 읽어보고, 그 사람만의 ‘기억 언어’에 맞춰 답변하거나 제안을 건네는 CRM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예는, 고객이 남긴 사진을 작가가 수기로 출력해 자신의 작업실 벽에 붙여두고, ‘내가 만든 물건이 그 사람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매일 바라보며 새로운 제품의 영감을 얻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전통 수공예 브랜드의 CRM은 기계화된 데이터보다도, 한 사람의 삶에 깊이 들어간 경험의 파편들을 기록하는 ‘감각의 데이터화’를 중심에 둬야 합니다.
이는 기술적으로는 ‘비정형 CRM’ 혹은 ‘스토리 기반 CRM’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향후 고객이 브랜드와 맺는 관계를 정량이 아닌 서사로 이해하려는 중요한 시도입니다. 정교한 숫자보다, 한 사람의 진심이 더 무게를 가지는 브랜드라면 반드시 검토해야 할 CRM 전략입니다.
팬을 고객으로 대하지 말고, 동반자로 초대하라: 관계 기반 CRM의 완성
CRM의 마지막 핵심은 고객을 단순히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브랜드의 여정에 함께하는 동반자로 초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전통 수공예 브랜드에게는 이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진심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충청북도 괴산의 죽세공 브랜드 ‘청산공방’은 2022년부터 구매 고객 20명을 선정해 ‘기술 후원회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회원들에게는 매달 제품이 가지는 문화적 배경과 장인이 어떤 방식으로 재료를 고르는지에 대한 기록 영상이 공유되며, 연 1회 ‘작가와의 일일 공방 체험’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소비자가 아닌, 이 브랜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자로 자리 잡게 됩니다.
또한 서울 종로에서 한지공예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언공방’은, 정기적으로 후원 회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지 아트워크를 제작하여 브랜드의 SNS 채널에 소개합니다. 이때 작가는 고객의 실명을 넣거나, 익명으로 감정의 일부만을 기록하며, 브랜드와 고객이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작품화된 CRM’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 수공예 브랜드가 일반 소비재 브랜드와는 다른,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동체 기반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CRM은 더 이상 마케팅 부서에서만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작가와 고객이 함께 엮어가는 하나의 서사로 변모해야 하며, 이때 브랜드 충성도가 아닌 브랜드 공감도를 중심에 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