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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공예

전통 수공예 산업을 지키는 장인들: 3대째 이어온 기술 이야기

by sulgasssworld 2025. 6. 27.

한국의 전통 수공예 산업은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깃든 문화적 유산입니다. 특히 그 기술을 수십 년간 지켜온 장인들, 더 나아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수공예 장인 가문은 이 산업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감과 정신을 기반으로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도, 일부 장인 가문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수익성과 효율성보다는 장인의 품격과 원칙을 우선시하며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은 수공예 산업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들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물건이 주는 깊은 가치와 의미를 알기에,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계십니다. 특히 3대째 이어지는 장인의 가문에서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닌, 가족의 철학, 예술적 감각, 윤리적 제작 방식까지 함께 전승되면서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와도 같은 정체성을 지니게 됩니다.

 

 

전통 수공예 산업을 지키는 장인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3대에 걸쳐 전통 기술을 이어오며 대한민국의 수공예 산업을 지켜내고 있는 장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그분들이 어떠한 철학과 방식으로 이 일을 이어오고 계신지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전통은 살아 숨 쉬는 유산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가치의 깊이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전하는 장인들

전통 수공예 장인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기술을 대하는 태도, 즉 장인정신입니다. 실제로 충청북도 단양에서 3대째 한지 공예를 이어가고 있는 김춘석 장인은 손자에게 한지 뜨는 법을 가르치면서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기술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

 

김 장인의 가문은 조선시대 때부터 한지를 만들어온 집안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 시기를 모두 견뎌내며 기술을 보존해 왔습니다. 현재 그의 아들과 손자도 각각 2대, 3대 장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 사람 모두 문화재청이 인정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이자 전통문화재 복원 전문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이 가문은 한지를 단순한 종이가 아닌 ‘숨쉬는 생명체’로 여깁니다. 나무 껍질을 삶고, 두드리고, 건조하고, 접는 수백 가지 과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며, 그 어느 것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특히 3대째 기술을 이어받은 손자는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한지를 활용한 조명 디자인과 예술 설치 작품 등 현대 수요에 맞는 콘텐츠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통 수공예 장인 가문은 단순히 ‘기술’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가진 윤리, 미학, 문화적 사명감까지 함께 전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화된 교육 시스템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입니다.

 

 

산업의 논리가 아닌 품격의 논리로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오늘날 많은 산업은 빠른 생산성과 낮은 단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3대째 전통 수공예를 이어오고 있는 장인 가문들은 산업의 논리보다는 품격의 논리로 존재해 왔습니다. 경상남도 통영에서는 전통 나전칠기 공예를 80년 넘게 이어온 ‘이 씨 가문’이 있습니다. 이 가문은 첫째 장인이자 할아버지였던 이세창 명장이 1950년대 통영의 수산시장 근처에서 나전칠기 소공방을 시작한 이후, 그 철학과 공정 방식을 거의 바꾸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세창 명장은 살아생전 “예술은 팔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과 손자도 그 가르침을 지켜가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제품이 아닌, 완전히 손으로 하나하나 맞춰나간 나전 장식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년 200점 이하의 작품만을 제작하며, 수량이 아닌 품질로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철학은 오히려 프리미엄 고객층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이 되었고, 지금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도 이들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전통 수공예 산업이 ‘속도’나 ‘가성비’가 아닌, ‘철학’과 ‘품격’으로도 충분히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입니다. 3대에 걸쳐 동일한 철학을 지켜온 이들 가족의 여정은, 우리에게 기술 이전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젊은 장인들, 전통을 다시 일상 속으로 연결하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전통 수공예를 박물관이나 전통시장 안의 ‘옛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3대째 전통을 이어받은 젊은 장인들이 전통 수공예를 일상과 트렌드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옻칠 기술을 계승하고 있는 ‘조 씨 가문’의 3세대 장인 조민혁 씨는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민혁 씨는 어린 시절부터 옻칠 그릇을 닦고 칠하는 일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된 그는 단지 전통 기법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는 옻칠 제품을 기획했습니다. 그 결과, 조 씨는 기존의 옻칠 기술을 활용해 노트북 파우치, 스마트폰 케이스, 액세서리 등으로 확장했고, 이를 온라인 브랜드로 전환하여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트렌드에 맞춘 변형이 아닙니다. 젊은 장인들은 전통의 정체성과 기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현대 감각과 연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기획자이자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통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전통을 살리는 것”임을 알고 있으며, 새로운 언어로 전통을 말하고자 하는 세대입니다.

 

 

장인들의 시간, 전통의 미래가 되다

3대째 전통 수공예를 지켜온 장인들의 이야기는 단지 ‘기술의 유산’이 아니라, 한 세대를 넘어선 철학과 사명감의 기록입니다. 그들이 손으로 만든 물건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시간과 땀, 가족의 기억, 그리고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결과물입니다.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희소성과 정성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통 수공예 산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장인들의 이야기를 단지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사회와 연결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의 중심에는 늘 장인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어가는 가족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손과 마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